눈물요리
link  엄요안나   2021-05-24

우리 옛 어머니들은 음식의 간을 볼 때 머리속에 기억해 두었던 눈물맛의 간을 맞추었던 것이다. 그리해야만 그 음식맛이
난다는 전통적인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 국물을 덥힐 때 새끼손가락으로 휘저어 음식의 온도를 체온과 같게 하는 것과
음식의 간을 눈물이라는 체액의 염도와 같게 하는 지혜는 한국 음식문화를 해석해보는 데 있어 중요하고 자랑스런 열쇠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된 시집살이로 "눈물 서 말 흘리지 않고는 음식맛을 못 낸다"는 속담이 실감을 갖게 한다.

칼로리를 재고 그램을 재며 아무리 과학적으로 조리를 해도 내지 못한다는 '어머니의 맛'이란 숨어서 울도 또 울어 눈물맛을
익히지 않고는 못 내는, 그런 슬프디 슬픈 맛인 것이다. 남도 부녀자들이 잡가에 "고추방아 눈물은 싱겁디 싱겁고 시모 구박
눈물은 누리디누린데 팔자타령 눈물은 이다지 짜디짜냐. 주르륵 흐르는 눈물은 시큼한데 괴었다가 넘치는 눈물은 매캐하더라"
했으니 얼마나 많이 울었기로 눈물맛까지 가려서 분별할 수 있었던가 숙연해지기만 한다.

유배중에 하서 김인후가 저녁놀 지는데 을 읽다가 문득 읊은 시가 있다.
"푸른 강물 위의 부르지 못한 혼이여, 백일이 어느 때에 원통함을 비춰주리. 석양에 물든 눈물 억울해서 못 떨어뜨리겠네"
하였고 후에 하서의 문인 하나가 시 속에서 '누의 미학'을 이만큼 삭혔던 나라가 또 어떤 나라에 있었던가 싶다.

근간 에 눈물 속에는 세균을 죽이는 라이소탐이라는 성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농도에 따라
분비량이나 분비농도가 크게 달라지는 '로이시닌케팔린'이라는 성분이 발견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성분은 양파를
썰 때 나오는 물리적 눈물에는 없고, 슬퍼서 울 때 나는 감정적 눈물에만 분비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추방아 눈물은
그 성분이 없어 싱겁디싱거웠고, 팔자타령 눈물의 그 성분 때문에 짜디짰으며 , 괴어 흐르는 누는 그 성분이 농축되어
매캐했던 것이 아닐까.

하서의 문인이 꿰었다는 누의 구슬은 바로 그 감정화학물을 농축시킨 구슬이 되겠고........ . 그렇다면 '로이시닌케팔린'
으로 간을 맞추었던 한국의 음식은 그 하나하나가 시가 아니었던가! . 정말 멋있다.










이규태 코너 (1984년 3.18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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